이른바 '갑질의 시대'다. '물벼락 갑질'과 '땅콩회항' 사건 등을 계기로 수면 위에 떠오른 '갑질' 문제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몇 가지 사례로 재점화된 '갑질' 논란은 사회 곳곳에 만연해있지만 갑질 피해자의 스트레스와 처우에 대한 사회적인 보호는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땅콩회항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전 사무장은 사건 이후 우울증 등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아 휴직했다가 지난해 5월 복직했다. 하지만 직급은 팀장에서 일반승무원으로 강등됐다. 이후 계속된 스트레스로 최근 양성종양의 제거수술을 받았다. 이처럼 직장 내 갑질을 비롯한 스트레스 상황은 종종 직접적인 신체질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늘어나는 '직장 내 갑질', 스트레스 삼키다가 속병 생길 수도
최근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 산재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26명이 정신질환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4건에 불과했던 2008년에 비해 9년새 5.3배나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 인정받은 126건의 정신질환 산재 중에는 우울증이 52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적응장애 32건, 급성 스트레스 장애 8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21건, 불안장애 1건, 기타 12건 순으로 나타났다.
직장인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회사다. 이런 회사에서 스트레스 상황이 생기면 직장인 입장에서는 답답함에 가슴을 칠 수밖에 없다. 특히 우월한 지위에 있는 상사나 팀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면 피해자는 쌓여가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불안장애를 호소할 수 있다. 하지만 밥벌이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들은 가족 생각에 직장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와 제도적 규율방안' 보고서에는 지난 5년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직접적 피해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66.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유형으로는 협박·명예훼손·모욕 등의 '정신적인 공격(24.7%)'과 업무 외적인 일을 시키거나 과도한 업무를 지시하는 등의 '과대한 요구(20.8%)'가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상담 경험이 없는 노동자는 66.7%에 달해 대부분 속으로 삭이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고립된 상황에서 지속적이고 일방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뇌신경계에 기능 이상을 가져와 우울증, 공황장애, 강박증, 불면증 등 다양한 신경·정신계 질환을 야기할 수 있다. 환자 스스로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키우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적으로도 '갑질'에 대한 자정의 노력이 필요하다.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 음주·흡연으로 풀다가는 없던 병도 생겨나
산업의 패러다임이 서비스업으로 변화되면서 '직장 내 갑질'뿐만 아니라 '다양한 클레임' 등 직장 내·외부에서 스트레스를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졌다. 국내 한 취업포털의 조사에서는 직장인들이 스트레스 해소 방안으로 '술이나 담배로 해소한다(25.9%)'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오히려 뇌·심혈관 질환이나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기 쉽다.
보건복지부의 '2016년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서 '월간폭음률'(최근 1년간 월 1회 이상 한 번의 술자리에서 남성 7잔, 여성 5잔 이상 음주) 20~30대 남성과 여성이 각각 58.2%, 36.2%로 상당히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흡연율도 남성 그룹에서 19~39세가 46.7%인 것으로 높았다.
스트레스가 체내 혈액순환을 방해한다면 음주와 흡연은 디스크에 혈액과 산소가 공급되는 것을 방해한다. 디스크는 혈관 분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척추 주변 근육을 사용해야 혈액순환이 원활해진다. 하지만 흡연을 하면 일산화탄소가 혈액 내 적혈구와 산소의 결합을 방해하기 때문에 체내 산소 부족현상이 생긴다. 또 음주는 척추를 지탱하는 근육과 인대에 필요한 단백질을 알코올 분해에 쓰게 되면서 척추를 약화시킨다.
전문가들은 술을 마시거나 흡연을 하게 되면 긴장이 풀리면서 일시적으로 불안감도 줄어들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느낄 수 있지만 술이 깨고 나면 더 큰 불안감이 찾아올 수도 있고 척추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직장생활, 구직, 결혼으로 뒷목잡는 '2030 화병 환자', 6년새 53% 늘어
우리나라 국민의 대부분은 '한(恨)'이라는 정서에 익숙하다. 외세침략을 버티며 단일민족의 문화를 뿌리내려서일까.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면 참는 것이 최선이라고 배워서일까. 이처럼 누구나 참는 것을 최선이라 배우지만 참으면서 쌓이는 응어리는 '화(火)'로 나타난다. 잘 참는 민족성이 '화병'이라는 독특한 질병을 만들어낸 것이다.
1995년 미국 정신의학회에서도 '화병(Hwabyung)'을 정신장애 편람에 그대로 표기하며 가부장적이고 유교문화권인 한국 사회의 특이한 민속증후군이라고 정의 내렸다. 울화병으로도 불리는 '화병'은 인고의 세월을 받아낸 중년 여성들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2030세대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화병으로 한방병원을 찾은 20~30대 환자는 2016년 2859명으로 2011년 1867명에 비해 약 53% 증가했다. 이 중 남성 환자는 846명으로 2011년(387명)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화병의 주요 증상으로는 소화가 안 되는 듯 명치에 뭔가가 걸린 듯한 느낌, 전신 피로감, 뒷목과 어깨의 뭉침 현상 등이 있다. 한의학에서는 기혈이 뭉쳐 풀리지 않기 때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고 본다. 화병은 방치하면 공황장애나 사회부적응, 협심증으로도 이어질 수 있고 목이나 어깨 근육통, 턱관절 장애 등 신체에 직접적인 통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직장인들이 화병을 잘 다스리려면 무조건 참는 마음으로 감정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 스트레스의 대상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명상이나 운동을 통해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출처: 중도일보 2018.05.27 대전자생한방병원 김영익 병원장 |